마라톤 참가자 실신 현장에서 대처하는 방법

몇 년 전 주말 아침, 마라톤 대회장 근처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데 누군가 “사람이 쓰러졌어요” 하고 외쳤습니다. 뛰던 참가자가 길가에 주저앉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더군요. 주변에서는 물을 가져오자는 말부터 차로 병원에 태워 가자는 말까지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저도 그때는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그 뒤로 대회장에 갈 일이 있으면 주차 위치만큼이나 구급 인력과 자동심장충격기 위치를 먼저 눈여겨봅니다.
쓰러진 이유를 현장에서 단정하지 않기
마라톤 참가자 실신을 보면 흔히 “더워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더위와 탈수, 오래 서 있다가 생기는 혈압 변화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근데 달리는 도중 쓰러졌다면 심장 문제 같은 위험한 원인도 생각해야 합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저앉은 경우에도 겉모습만 보고 가벼운 탈진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사람들을 조금 물리고 차나 자전거가 지나오지 못하게 주변을 확보하는 게 좋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마구 일으켜 세우거나 붙잡고 걷게 하면 다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머리를 부딪쳤는지, 가슴 통증이나 심한 숨참을 호소했는지, 쓰러지기 전 비틀거리거나 횡설수설했는지 기억해 두면 구급대에 설명할 때 도움이 됩니다. 함께 온 일행이 있다면 평소 질환이나 복용 약을 알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요.
가장 먼저 반응과 호흡 확인하기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걸어 반응을 확인합니다. 반응이 없으면 곧바로 119에 신고하고, 주변 사람 한 명을 콕 집어 대회 의료진과 자동심장충격기를 불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누가 좀 불러 주세요”라고만 하면 서로 기다리는 일이 생기더군요. 신고할 때는 대회 이름뿐 아니라 코스 표지판 번호, 가까운 교차로, 주차장 출입구처럼 찾아오기 쉬운 위치를 알려주는 편이 낫습니다.
숨을 쉬지 않거나 헐떡이는 정도라면 119의 안내에 따라 가슴압박을 시작하고 자동심장충격기가 도착하면 기기의 음성 안내를 따릅니다. 숨은 쉬지만 반응이 없다면 호흡을 계속 살피면서 구급대 지시를 받습니다. 구토할 위험이 있고 큰 외상이 의심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도가 막히지 않게 옆으로 눕히는 조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쓰러지며 머리나 목을 다친 것 같다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그 사실을 119에 바로 알리는 게 좋습니다.
더위가 의심돼도 물부터 먹이지 않기
더운 날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이 어눌해지거나 의식이 흐려진다면 열사병을 의심해야 합니다. 질병관리청은 이런 경우 즉시 119에 신고하고 몸을 빠르게 식히도록 안내합니다. 땀을 흘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사병 가능성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그늘이나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옷을 느슨하게 한 뒤, 몸에 시원한 물을 적셔 바람을 쐬어 줍니다. 얼음주머니가 있으면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 쪽에 댈 수 있습니다. 구급대가 올 때까지 곁에서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조심할 게 물입니다. 의식이 없거나 몽롱한 사람에게 물병을 입에 대면 사레가 들거나 기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의식이 또렷하고 스스로 삼킬 수 있는 사람이라도, 쓰러졌던 사실은 의료진에게 알려 평가를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특히 뛰는 중 실신했거나 가슴 통증, 두근거림, 심한 숨참이 있었다면 단순히 쉬고 다시 뛰어갈 일이 아닙니다.
출발 전과 결승선 뒤에도 몸 상태 살피기
예방은 거창한 장비보다 당일 컨디션 확인에서 시작합니다. 열이 나거나 몸살 기운이 있는데 참가비가 아깝다고 출발선에 서는 건 무리일 수 있습니다. 평소 뛰던 거리보다 긴 코스에 처음 도전한다면 초반 인파에 휩쓸려 속도를 올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운 날에는 평소보다 강도를 낮추고, 어지럽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기록을 포기하고 멈춰야 합니다. 미국심장협회도 운동 중 어지럼, 흉부 압박감, 평소와 다른 숨참을 경고 신호로 봅니다.
급수대에서는 땀을 흘렸다고 물을 한꺼번에 많이 들이키기보다 몸 상태와 갈증을 살피며 마시는 편이 낫습니다. 물을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결승선을 지난 뒤에도 바로 주저앉기보다 천천히 걸으며 상태를 살피고, 어지럽다면 가까운 의료진에게 말해야 합니다. 차를 몰고 왔다면 더더욱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사이 다시 휘청거릴 수도 있으니, 몸이 이상하면 운전대를 잡기 전에 도움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